바르셀로나 파빌리온(Barcelona Pavilion)은 1981년에 건설된 서울고속버스터미널보다도 덜 오래된, 1986년의 재현 작이다. 도슨트는 “이 파빌리온은 누구도 진짜를 경험할 수 없는 건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재경험의 불가능성은 모든 파빌리온의 본질이다. 한시적 이벤트를 고려해 만든 고가의 쇼룸―파빌리온―은 이벤트 종료 뒤 해체될 운명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곧 해체될 건물에 대해 도면, 드로잉, 스케치 등으로 철저히 기록하려 한다.
1929년에 지어진 진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공식명칭은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 독일관’이었다.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는 어떤 프로그램도 고려하지 않은 순수한 건축을 설계했다. 의자와 조각상 외에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풍경(도판 1)은 오브젝트의 영속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프레임이 되었다. 이 프레임은 벽, 천장, 기둥, 그리고 창문과 같은 건축 요소만으로 이뤄져 있다. 평면에서 기하학적 선이었던 벽은 대리석 패턴의 반복을 통해 평면성을 강조하고, 십자가였던 기둥은 크롬 재질로 주변을 반사해 자신을 감추었다.
이 환상적 경험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투시도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도판 2). 간략한 명암법과 콜라주로만 표현된 이 이미지는 일반적 건축 재현과는 달리 입체를 강조하지 않는다. 투명하게 겹쳐진 텍스처는 비선형적으로 시간을 연결하며, 1점 투시도에 의해 단일 평면에 놓인다.
2009년, 미스 반 데어 로에 골프클럽하우스(Mies van der Rohe Golfclubhaus) 프로젝트의 큐레이터 크리스티아네 랑게(Christiane Lange)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있던 미스 반 데어 로에의 1930년 공모설계 투시도를 발견한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1:1 스케일의 ‘모델’을 로브레흐트 엔 다엠 아키텍턴(Robbrecht en Daem architecten)에 의뢰한다. 건축가들은 석재를 배제하고, 합판과 타일을 주재료로 사용했다. 그나마 온전히 구현된 재료는 크롬새시와 기둥뿐이고, 유리조차 끼워져 있지 않아서, 마치 효과만 보기 위해 나무 머터리얼(material) 파일을 집어넣은 사무실 인하우스 컴퓨터 렌더링처럼 거칠어 보인다(도판3). 그럼에도 이 1:1 모델 사진에 대한 건축 커뮤니티 댓글은 호평 일색이었다. 사람들은 모형을 뻥튀기해 놓은 듯한 이 공간의 사진이, 지어지지 못했던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의 비례를 구현해준 사례라며 칭송했다.
한편, 2017년에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비물질화(dematrialized)’ 이벤트가 열렸다. 건축가 안나 & 유제니 바흐(Anna & Eugeni Bach/A&EB) 건축 사무소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모든 재료에 흰색 시트지를 붙이고, 이벤트가 끝난 뒤 떼어내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도판 4). 미스 반 데어 로에 특유의 석재와 금속의 물질성을 완전히 없애고 순수한 그리드만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질료성에 관한 비평적 논란을 야기할 목적이 명백했음에도, 건축 커뮤니티에서는 시트지 부착으로 파빌리온이 하얗게 변해가는 과정이 마치 건물에 그라피티를 그리는 듯한 반달리즘을 연상시킨다며, 이런 뻔한 작업에 어떤 비판 지점이 있느냐는 조롱 섞인 댓글이 달렸다. 비물질화 프로젝트가 테러로 여겨지는 이런 상황은 골프클럽하우스 ‘모델’에 대한 반응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파빌리온의 복제품 위에 흰색 시트지를 붙이는 것뿐인데도 말이다. 심지어 시트지를 떼어냈을 때 남게 될 ‘흔적’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흰색 시트지에 대한 과민반응은 2018년의 한국인에게는 의아한 일이다. 한국인은 흰색 방으로 도피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흰색 인테리어는 이제 인스타그램 등의 SNS에서 인기 있는 이미지가 되었다. 짙은 와인 빛의 꽃무늬 냉장고와 클림트의 키스가 인쇄된 금고가 놓일 법한 전형적인 한국의 방은 보통 노란 장판, 화려한 포인트 벽지, 체리색 몰딩 등으로 대변된다. 인테리어 업체의 비포/애프터 광고에 등장하는 변신한 방은 그에 비하면 찬란한 ‘하얀 빛’이다. 그렇다면 이와 정반대에 서있을 ‘짙은 어둠’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 답은 “공포의 한국식 인테리어.jpg”일 것이다. 인터넷 밈(meme)이 된 이 게시물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둠에 한없이 가깝다.
이것은 혐오 요소가 전부 합성된 키메라의 신화이다. 이 게시물은 북유럽식 흰색 인테리어의 방 이미지 위에 한국적 인테리어 요소가 하나씩 쌓여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1) 공포의 원형 형광등, 2) 공포의 포인트 벽지, 3) 공포의 체리색 몰딩, 4) 공포의 노란 장판, 5) 공포의 꽃무늬 침구, 6) 공포의 천장 야광별. 여섯 가지는 순차적으로 방에 쌓여간다. 이 묵시록을 읽은 사람들은 저마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거주경험을 떠올릴 것이다. 여기서 흰색은 절대 악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이자, 완벽하고 올바른 것으로만 방을 채워줄―키메라를 없애 줄―영웅이다.
흰색의 운명은 저들의 우려나 우리의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비물질화 이벤트에 대한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잘 계획된 시트지로 덮인 파빌리온은 프레임의 바깥(도판 5)을 보여주며, 주변 맥락을 드러내는 새로운 이미지가 되었다(도판 6). 반면, 한국에 도착한 영웅―흰색―은 흰색 벽이 시트지나 반짝거리는 도배지로 마감된 것임을 알았을 때, 벌어진 재료 사이를 채운 흰색 실리콘이 황변 되었을 때, 공사를 위해 빼놓았던 가구와 집기로 방이 다시 채워질 때, 믿었던 미래가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한국인의 공포의 근원에는 계획의 부재와 오브젝트간 시간의 불연속 상태가 자리한다. 그리고 흰색 인테리어 리노베이션은 이런 두려움을 깨끗이 잠재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서울의 곳곳에서는 공포의 감정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공간 형식실험이 반복되고 있는지 모른다. 치밀하게 계획된 서울의 ‘전시’도 그중 하나라고 부를 수 있다. 이는 사라질지 모르는 진실을 기록하기 위한 최적의 공간이다. 또한 환경을 그대로 두고 여러 각도로 볼 수 있는 시간―서울에서는 경험하기 거의 불가능한―을 제공한다.
서울의 전시 공간은 빠르게 바뀌는 중이다. 초기에는 공포의 요소를 삭제한 폐허 안에 깨끗한 오브젝트와 그래픽, 사진 이미지를 얹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전시 공간에는 흰색이 덧대어지고 있다. 물론 그것은 광고 속 헛된 희망과는 다르다. 완전한 흰색 사각형이 될 수 없는 전시장은 가까스로 폐허의 흔적을 지우고 내부의 배경과 작품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새로운 공간은 건축의 평행 투시, 그리고 천장도와 같은 위, 아래를 동시에 바라보는 시점으로 공간과 오브젝트를 담는다. 익숙한 공간, 일상의 사물을 담은 이미지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라질 전시장의 투시도가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가까운 미래에 재구축될 것은 자명하다.
«스테이트-포인트 state-point», 내부로부터의 시선 – 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