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매체로 작업하는 작가 김동희의 신작은 주택 레노베이션 프로젝트다. 이태원 가구 거리 안쪽에 놓인 간판이자 전시명인 ‘pr,op’은 《뉴 스킨: 본뜨고 연결하기》(2015)에서의 그의 작품 〈Primer, Opacity〉의 각 단어 앞 두 글자를 따서 합성한 것이다. 《pr,op》은 진행 기간 동안 건축가, 디자이너, 사진가, 예술가 등과 협업한 작품과 오브젝트를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한다.
제도권 전시장에 놓일 좌대이자 신생 공간 양식의 재현물이 되고자 했던 〈Primer, Opacity〉와 달리, 《pr,op》은 2016년 이후 시작된 서울의 새로운 상업 공간 유형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전시에서는 과거 신생 공간의 특징으로 언급되었던 가벽, 노출 콘크리트, T5 조명 등을 찾을 수 없다. 대신에 그와 대비되는 상업 공간의 양식과 그곳에서 발생하는 유사-전시에 대한 비평적 양식이 눈에 띈다. 이는 시공업자에 의해 만들어진 창틀과 손잡이 등 의문스러운 요소들을 남겨둔 채 표피만을 정리하는 작업 방식으로 드러난다. 카펫을 깐 바닥, 스투코(stucco) 텍스처로 마감된 천장과 벽, 양옥의 둥근 조명 등 표피에 붙은 다채로운 마감재는 그가 관여할 수 없었던 과거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레노베이션 이후 주목해야 할 점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다. 강연, 워크숍, 패션쇼 등으로의 프로그램 변경은 전시된 가구, 소품, 식물 등의 역할 변경 및 재구성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미술 전시의 가변성과 유연성을 보여준다. SNS용 유사-현대 미술 이미지를 지향하는 당대의 레노베이션 공간들―이태원, 성수, 홍대 등지의 커피숍과 레스토랑―을 떠올려 보자. 누군가는 이들 상업 공간이 향하고 있는 불안한 운명을 지적할 것이고, 누군가는 스타벅스가 역설하는 ‘제3의 공간’처럼 역설적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기에 언뜻 전형적으로 보이는 《pr,op》의 공간 양식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활동은 SNS 명소를 욕망하는 개인, 반기업 정서마저 흡수하려는 기업 모두에 대한 가장 우아한 비평으로 읽힌다
한편으로 《pr,op》은 건축, 가구, 예술품이 공간 그 자체를 매개체로 삼던 시기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이태원의 작은 2층 주택을 통해서 도시 재생산을 둘러싼 건축계의 현상과 미술계의 욕망이 교차하는 거울상을 펼쳐내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pr,op》의 내부 공간은 안이하게 세워진 기존의 벽과 기둥에 맞선 유일한 존재―거울―에 비친 풍경들의 조각 모음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거울은 창틀 아래나 벽 앞에 서서 바깥과 안쪽의 풍경, 가짜와 진짜가 뒤섞인 질료, 구조와 구조가 아닌 것을 한 번에 보여주는 또 다른 ‘창문’이 된다. 거울은 신의 시점인 평면에서 눈에 띄지 않는 선(line)으로 표시될 뿐이다. 그러나 해당 요소는 인간의 시점인 투시도에서 공간을 뒤틀며 확장하는 보이지 않는 구조체(infrastructure)로서 드러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김동희가 구축하려는 감각의 산물이다.
겸손한 구축에 관한 소고: 김동희 개인전 《pr,op》,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