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VM SPACE – SUPERELLIPSE

INTERVIEW – VM SPACE

박지윤(박): 초타원 곡선은 변수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진다. 건축, 전시, 출판의 영역을 다루는 초타원형의 활동과 닮았다. 

정현(정): 2012년 출판사를 만들며 초타원형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지었다. 시인이자 수학자인 피트 하인과 가구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슈퍼엘립스 테이블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나중에야 초타원형이 하나의 고정된 형태를 지닌 것이 아닌 변수에 따라 형태가 변하는 기하 도형임을 알게 되었다. 2017년 독립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될 설계사무소를 설립하고자 했을 때, 이 설계사무소가 지향하는 바가 변수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초타원형의 성격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여 굳이 새 이름을 짓기보다 초타원형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박: 출판사로 초타원형을 시작해서인지, 출판 활동이 가장 두드러진다. 건축가가 왜 책을 만들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나? 

정: 대학 시절 나는 건축을 대부분 책으로 배웠다. 처음으로 구매했던 건축 책은 아티누스라는 서점이 폐점할 때 중고로 구매했던 『프랭크 로이트 라이트: 더 마스터웍스(Frank Lloyd Wright: The Masterworks)』(1993)였다. 책을 읽으니 미국에 가본 적이 없었음에도, 미 동부와 서부에 펼쳐진 그의 건축물들을 샅샅이 살펴봤다는 흡족함, 온전히 간직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이 감각을 내 작업을 통해서도 느끼고 싶어, 미국에서 건축대학원을 다닐 때 학기가 끝나면 도면과 모형은 버리더라도 작업 과정 중 나온 드로잉, 사진, 텍스트 등은 버리지 않고 모아 스테이플러로 엮어 책을 만들었다. 언제나 습관처럼 출판을 해왔기 때문에 왜 책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루도비크 발란트의 “어쩌면 책은 건축을 위한 유일한 박물관”이라는 말을 항상 되짚어본다. 모든 건축과 건축가의 종착지는 결국 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박: 초타원형의 이름으로 처음 선보인 책 『PBT』(2014)에는 건축가의 작업 방식이 표현되었다고 했다. 건축가의 작업 방식이란 무엇인가? 

정: 내가 만든 책 작업의 대부분은 콘텐츠를 담기 위한 책의 넓이, 높이, 지질 등을 설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를 기반으로 책을 채우기 위한 텍스트나 이미지를 만들어 넣기도 하고, 책을 펼치거나 구부리거나 쌓아서 조형이 가능하도록 디자인하기도 하며, 책이 놓일 공간이나 사물까지 주의 깊게 상상해보기도 한다. 구체적 형태, 수치, 재료는 물론 쌓고 놓는 방식까지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점에서 나의 책 만드는 과정은 건축물을 설계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PBT』의 경우, 책의 내지는 건축 평면도를 그리듯 디자인했다. 삽입된 이미지는 나가고 들어오는 입구가 있는 공간이고, 페이지 숫자는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며, 글자는 이 프레임을 드나드는 사람 또는 그것을 채우는 가구다. 『PBT』 1쇄를 모두 소진하고 2쇄를 제작하며 시각 문화 연구자 윤원화가 쓴 『PBT』의 비평문 ‘한 후원자의 회신’을 커다란 띠지에 담았다. 건축물의 표면 위에 머물며 이를 감싸기만 하는 외피처럼, 띠지에 담긴 그의 텍스트는 외피를 장식하는 그래픽이나 패턴처럼 작동하기를 바랐다. 

박: 대중문화에 영향을 받은 작가를 소개하는 <네/아니오/좋아요/싫어요/사랑/혐오/댓글/공유: 2000–2020년 한국 대중문화의 초상(이하 한국 대중문화의 초상)>(2020) 또한 전시로 시작했지만 책으로 마무리했다. 전시에서는 여덟 명의 작가를 소개했으나 책에서는 무려 작가 214명의 작품 856점을 다뤘는데, 이 작업도 처음부터 출판을 목표로 둔 것인가? 

정: ‘한국 대중문화의 초상’은 처음부터 많은 수의 한국 작가를 지면에 담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전시가 프리퀄이고, 출판이 본편이었던 셈이다. 『한국 대중문화의 초상』(2020)은 대중문화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모든 한국 작가를 책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편견 없이, 위계 없이 나열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작가의 참여를 유도해야 했고, 설득해야 했다. 따라서 그들에게 프로젝트의 의도, 개념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출판에 앞서 갤러리에서 전시를 진행한 이유는 많은 작가에게 『한국 대중문화의 초상』이 보통의 화집이 아닌 책 안에서 행해지는 전시라는 점을 쉽게 전달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였다. 

박: 큐레이터의 역할도 하고 있기에, 수집하고 있는 작가 리스트가 있을 것 같다. 그 목록의 카테고리는 어떻게 구분되어 있나? 

정: 초타원형의 전시 기획은 물리적으로 대략 1:20 크기의 모형으로 축소 가능한 스케일을 추구한다. 이는 1:20의 건축 모형이 휴먼 스케일을 판단하기 좋은 스케일이라는 생각과 연관된 것이다. 이 스케일에서 인식 가능할 정도의 뚜렷한 이미지를 만드는 작가를 좇는다. 매체와 질료를 엄밀하게 다루는 회화 작가, 조각가, 가구 디자이너, 공예가 등을 찾아 리스트에 포함하고 있다. 명확한 범주에 담을 수 있는 작가야말로 다양한 주제의 전시를 기획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박: <접촉: 사람. 사물. 장소.>(2022)는 그간 초타원형의 행보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일반 상가를 갤러리로 리노베이션 한 후, 해당 전시 공간을 전시하고 이를 위한 안내서를 만들었다. 초타원형의 지향점이 여기에 있다고 보면 될까? 

정: 나의 첫 개인전 <세트 피스>(2019)는 책과 책을 놓는 책장, 그리고 이것들을 위한 공간의 디스플레이 계획을 다시 책으로 환원해 보는 실험이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슬기와 민은 전시에서 선보인 두껍고 무거운 책과 가구를 중철 제본의 얇고 가벼운 진(zine)으로 탈바꿈했다. 두 번째 개인전 <접촉: 사람. 사물. 장소.>는 을지로에 위치한 상업 공간을 갤러리로 리노베이션하고 이 리노베이션을 콘텐츠 삼아 전시를 감행하는 실험이었다. 리노베이션의 과정, 리노베이션이 전시가 되는 과정 또한 출판물로 순환될 것이다. 초타원형의 지향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꼭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이러한 순환의 시도가 변치 않고 계속될 것만은 확실하다. 

박: 『CC』(2017)의 책 소개에서 ‘책 같은 것’이라 쓰고, 『건축, 전시, 큐레이팅』(2019)에 수록된 글에서는 ‘건축적인 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표현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정: 흔히 책이 아니라고 건축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각각 책의 영역, 건축의 영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책 같은 것’, ‘건축적인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책의 양식을 취하고 있지만 책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피드백을 받은 『CC』, 건축이 탐구해볼 만한 길을 제시하는 성취임에도 건축계에 그다지 알려지지 못한 예술가와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업. 이러한 작업들은 책과 책이 아닌 것, 건축과 건축이 아닌 것의 경계에 위치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책 같은 것’, ‘건축적인 것’으로 호명하는 순간 그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시작점, 두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교차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박: 그래픽 디자이너 슬기와 민, 신신, 사진가 김경태, 비평가 윤원화 등과 함께 꾸준히 작업해왔다. 건축가라 명명되지 않는 이들과의 협업이 ‘건축적인 것’에 가닿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나? 

정: 슬기와 민, 신신, 김경태, 윤원화뿐 아니라 나와 협업한 사람 모두, 내가 생각하기에, 건축가의 작업과 다름없는 작업을 하는 건축가적인 이들이다. 그들과의 협업은 마치 초타원형의 변수처럼 내 작업을 결정짓는 요인이 되어 나 답지만 그들다운 결과물, 건축이지만 건축적인 결과물을 생산하게 한다. 예컨대 가구 디자이너와의 공간 작업은 센티미터의 스케일에서, 그래픽 디자이너와의 출판 작업은 밀리미터의 스케일에서 이루어지기에 그 결과는 건축가인 나의 구상을 상회하지만 협업자인 나의 기대를 충족하는 미시적 레벨의 건축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과의 협업은 손과 사물, 인간과 공간이 맺는 관계를 관찰하고 숙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박: 작은 소품부터 제품, 인테리어, 브랜딩, 큐레이팅까지 아우르는 젊은 건축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건축가들의 영역 확장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건축가의 영역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정: 최근 젊은 건축가들은 책, 의상, 가구, 인테리어 등 수많은 영역을 건축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러한 확장은 건축을 철학, 도시계획 등과 연결 짓는 방식에 의한 확장과 달리, 보다 미시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젊은 건축가들의 새로운 방향성은 건축의 언어를 다채롭게 만들 수 있는, 여러 층위와 영역에서 건축을 익숙하게 호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수상 소감을 밝히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을 언급한 바 있다. 건축도 개인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장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박: 초타원형을 설립한 지 10년이란 기간이 흘렀다. 그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 달라. 

정: 10년은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숫자다. 초타원형을 설립하며 앞으로 10년간 만들어낼 책과 공간을 계획했다. 그중 꽤 많은 것들이 실현되었고, 이 실현된 것들이 불러일으킨 반향은 설립 시의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렇기에 앞으로 기획하고 만들어질 나의 책과 작업이 어떤 기회와 변화를 불러들일지 더욱 기대된다. 올해 발간될 초타원형의 첫 책은 ‘한국의 디자이너’ 시리즈의 첫 권인 『신동혁–책』이다. 이외에도 초타원형 시각 문화 총서 9권, 온/오프라인 전시 공간에 관한 책 2권, 회화 작가 이윤성과 김서울의 작품집 각 1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SPACE(공간)」 2022년 7월호 (통권 656호)  ​인터뷰 / 책 같은 것, 건축적인 것: 초타원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