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PIEC-TXT-YWH – SUPERELLIP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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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다루는 많은 책이 있고, 그것을 분류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분류하는 십진분류법에서도 건축 책의 위치는 일정하지 않다. 2011년 개정된 듀이 십진분류법 제23판에서 건축은 ‘기술’ 항목 아래의 ‘건축공학’(690번대)과 ‘예술과 오락’ 항목 아래의 ‘건축’(720번대)으로 나뉜다. 한국 십진분류법의 경우 2009년 개정된 제5판은 이와 유사하게 ‘기술과학’ 아래 ‘건축공학’(540번대)과 ‘예술’ 아래 ‘건축술’(610번대)로 이원화된 구조를 유지했으나, 2013년 개정된 제6판부터 610번대를 비우고 540번대로 통합되었다. 분류 체계는 모든 것에 하나의 정확한 위치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한때 책을 분류한다는 것은 모든 지식을 분류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지식의 지도를 그리는 형이상학적 기획인 동시에, 활용과 관리가 용이하도록 도서관의 데이터베이스 구조와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실용주의적 기획이다. 각각의 책을 그것이 놓인 지적 맥락 속에 정확히 위치시키면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지적 공동체가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한데 모아 두는 일은 하나의 정답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적 관습과 기술적 조건에 따라 절충되고 계속 변형된다.

오늘날 인터넷 서점은 한 권의 책에 여러 개의 분류 기준을 적용한다. 책을 분류한다는 것이 책장의 특정한 칸에 위치를 고정하는 물리적 행위에서 검색 가능한 태그를 다는 가상적 행위로 변모한 결과다. 비록 인터넷 서점의 물류 창고에서는 여전히 각각의 책을 미리 구획된 특정 위치에 보관하는 방식으로 재고를 통제하겠지만, 독자 입장에서 아직 구입하지 않은 책들은 가상의 공간 속에서 얼마든지 재배치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한국어로 출간된 건축 책은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건축’ 페이지에 모여 있다. 이 페이지의 상단부에는 신간 베스트셀러를 소개하는 칸이 있는데, 9월 6일 현재 1위는 승효상(1952. 10. 26~)의 『묵상』(돌베개, 2019)이다. 하지만 이 책의 상세 정보 페이지로 들어가 보면, 그것은 ‘건축 – 건축 이야기’, ‘에세이 – 여행 에세이 – 해외 여행’, ‘에세이 – 종교 에세이 – 가톨릭’, ‘에세이 – 한국 에세이’, ‘여행 – 테마 여행 – 성지순례’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된다.  어떤 사람은 전혀 다른 주제 페이지에서, 이를테면 종교 에세이의 신간 베스트 1위로 동일한 책을 접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건축 책일까. 이것은 단순히 책의 내용에 따라 판가름할 수 없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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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칸에는 건축 전시 도록도 있고, 건축사학자의 책도 있고, 건축가의 책도 있다. 일종의 장르 애호가로서 말하자면, 내가 ‘건축 책’이라고 칭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건축가의 책이다. 예를 들어, 마리 렌딩(Mari Lending, 1969~)이 페터 춤토르 (Peter Zumthor, 1943. 4. 26~)를 인터뷰하고 헬렌 비네(Hélène Binet, 1959. 7. 25~)의 사진을 병치한 『역사의 느낌 A Feeling of History』(Verlag Scheidegger & Spiess, 2018)이라는 책이 있다. 비네의 사진은 춤토르의 작업이 아니라 디미트리스 피키오니스(Dimitris Pikionis, 1887. 1. 26~1968. 8. 28)가 1950년대에 재구성한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길, 더 정확히 말해 그 길에 깔린 불규칙한 돌들의 윤곽과 텍스처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은 텍스트의 내용과 어긋나지 않는다. 회색의 판재 또는 그와 같은 모형 재료를 닮은 이 얇은 책은, 건축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스스로 보려는 세계를 구축하는 특정한 방법을 개인의 특수성을 넘어 하나의 건축적 프로그램으로 일반화한다. 그것은 그 프로그램을 작동시켜 만든 작은 건축물로 성립하는 동시에, 오픈 소스 라이브러리의 소스 코드처럼 또 다른 건축물 또는 건축가를 만들 잠재력을 가진다. 건축 책은 연대기적 역사나 지적 재산권에 종속되지 않는 독특한 방식으로 아직 모르는 시간을 향해 개방되는데, 이는 다른 장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건축 책만의 매력이다.

건축을 하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건축 책은 가벼운 수수께끼다. 처음에 내가 건축 책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만들 때는 그것을 하나의 문학적 구성물로서 본뜰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책장은 나의 역사이고 그런 것으로서 나의 청사진이기도 하다. 책들이 쌓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떤 주제가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위한 별도의 칸을 만드는 것은 언젠가 그에 기반한 책의 생산을 예비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잠재적으로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책들의 연쇄 속에서, 다시 말해 도서관의 내부에서 책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건축 책을 만들 수 없다. 건축 책이 그토록 독특한 것은 그것이 건축가의 말로 이루어진 일종의 건축 도면 또는 모형과 같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또는 적어도 덧붙이거나 고쳐 만들 수 있는 작은 세계에 대한 꿈을 담는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적이다. 나는 그런 꿈을 좋아하지만, 스스로 그 꿈을 추구할 만큼 그것을 믿지는 않고, 어쩌면 그 꿈이 지나간 아수라장을 더듬어 보기 위해 책을 만든다. 그래서 내가 만드는 책은 대체로 건축 책이 아니라 역사책이 된다.

건축 책과 역사책은 서로 상반된 방식으로 움직인다. 역사책이 세계에서 책으로의 비가역적 운동을 추동한다면, 건축 책은 책에서 세계로의 가역적 운동을 함축한다. 정현(1981~)의 「세트 피스 SET PIECE」는 이러한 건축 책의 운동을 시각화하는 장치다. 그것은 그가 만든 책들을 놓아 보기 위해 만든 가구들, 그리고 다시 그 가구들을 놓아 보기 위해 구성한 하나의 방으로서, 삼차원의 공간인 동시에 “일인칭 시점”으로 구성된 하나의 장면이다. 이는 그 공간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하나의 물리적 좌표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그 공간 전체가 한 건축가의 시점에서 스스로 보고 싶은 것을 가장 잘 볼 수 있도록 구축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그 장면의 평면 계획과 렌더링 이미지를 받아 보았지만 아직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경험적으로, 시간 속에서의 입체적 시각은 타인과 공유하기 어렵다. 그는 시간을 가로질러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 보는 시점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지만, 그의 독자이자 관객으로서 내가 전시장에서 발견하게 될 것은 아마도 누군가의 측면일 것이다.

내 방에서 정현이 만든 책들은 여러 군데에 흩어져 있다. 『PBT』(2014)는 ‘수업 교재 – 미디어론’에, 『CC』 프로젝트(2016~17)와 다른 작은 책들은 ‘서울 – 2010년대’에, 그리고 『SE E』 시리즈(2019)는 내가 마지못해 ‘미분류 신간’이라고 부르는 책상 아래의 무법 지대에서 대기하고 있다. 나의 ‘서울 – 2010년대’ 선반은 과포화되어서 전면적인 재조정이 필요한 상태이기도 하지만, 슬슬 새 책장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그의 책들은 내 책장에서 ‘건축 신간’의 분류 기준이 애매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그것들은 순수한 건축 책의 이념에 근접하지만, 건축에 관련된 다른 책들과 자연스럽게 이웃하지도 않는다. 그의 책들을 건축으로 분류해서 모아 두려면, 건축 책 공간을 지금보다 훨씬 넓히고 다른 많은 책을 건축으로 재분류해서 옮겨 와야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필요하고 또 가능한 일인지 가끔씩 생각하면서, 예전에 내가 쓴 글들의 목록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하나씩 열어보거나 한다. 여태까지 내가 쓴 글을 모두 읽은 사람은 나밖에 없고, 그래서 그 목록을 하나의 풍경처럼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도 나밖에 없다. 설령 거기서 보이는 것으로 내가 또 하나의 책을 만든다고 해도, 독자가 내가 보았던 바로 그 풍경과 마주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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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 PIECE, 건축 책에 관한 단편 – 윤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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